청소년, 착한 고민을 하자.

최근들어 커다란 회의감을 느끼며 청소년, 그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되새겨 보았다.
어른과 어린이의 중간의 시기,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 등등 영어로는 youth, adolescent, teenager, teen 등..
또한 청소년기본법에서는 9세에서 24세 사이의 사람으로 칭하고 있다고 한다.

“1+1은 2다.” 라는 명제처럼 참/거짓을 판별하기도 어렵게 청소년을 딱 지칭하는 말도 참 없는것 같다.
오히려 “어중간한 시기다.”라는게 어울릴 정도다. 이 어중간한 시기에는 무엇보다도 인생의 큰 틀을 설계할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틀이 약한 사람은 금방 깨져 방황하고 틀이 강한 사람일 수록 미래를 나아가는데 이정표가 되어준다.

나는 남들보다는 빨리 미래에 대한 걱정을 했다.
중학교 1학년떄 부터 고등학교 진학을 걱정하고 중학교 3학년때는 오히려 진로에 대한 고민에 매우 혼란스러웠고
머리가 복잡해 깨질 지경이였다. 하지만 이런 착한(=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어질다.)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무살이 넘어서도 이런 고민을 하느라 끙끙 앓고 있는 사람이나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을
보자면 이 착한 고민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청소년 시절 착한 고민을 통해 올바른 자신의 진로를 찾아 가는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다. 중학교 3학년때의
진로시간은 나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이였고 무엇보다도 미래에 대한 로드맵을 어느정도 그려볼 수 있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주었다. 과연 내가 살아오면서 착한 고민을 하던 중 진로시간이 없었다면 목적없이 방황할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진로 교육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또한 중요해 하지 않는다. 독일의 그것과 비교해 보아 우리나라에는 더이상 장인이 없다는 원인에도 충분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다. 자신이 정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통해 행복함을
느끼고 기쁜지 모른다는 것이 직업을 가지게 될 사람으로써 의식 매우 결여되어있음을 나타낸다. 당연히 부모들도
당신의 자식들이 유명대학에 진학하여 대기업에 취직하고 높은 연봉을 받는 것에만 눈이 멀어 있는 것처럼 아무도
자식이 무엇에 기뻐하며 무엇에 보람됨을 느끼는지에는 단 1g의 관심도 잘 주지를 않는다. 그리고 그게 직업과 관련되어
발전되야 할 것임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내가 착한 고민을 하던 도중 도대체 내 착한 고민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았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내가 읽었던 책이나 주변사람들의 경험담, 그리고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그 분야에서 오히려 나의 착한 고민에 지도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 진로교육을 해주시던 그 선생님이다.
결국 착한 고민은 청소년 본인이 혼자 해야하는 고민이다. 그 누구도 나의 앞날에 자신의 잣대를 두어 이정표를 세우려고
도움을 주어서도 안된다. 오직 나 자신만이 최대한의 경험(물론 경험담을 통한 간접 경험까지도)과 가치관을 통해서
이정표를 작성한다. 그리고 슬슬 이정표를 땅에 꼽는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상으로는 중학교 3학년 16살까지는 착한 고민이 1차적으로 끝났으면 한다.
모든 고민이 끝나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16살 까지는 1차적으로 틀이 있어야 할듯하다. 바로 우리나라 현행 교육법상
최적이고 최단의 기간이다. 그 이유는 바로 고등학교 선택부터 우리는 이정표를 통해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래도
나름 배려를 한답시고 특수 목적 고등학교, 특성화 고등학교, 전문계 고등학교 등으로 고등학교도 다양하게 세분화 되어
있다. 더불어 중등교육 이후는 의무교육이 아니다. 또한 여력이 된다면 대안교육 또는 독학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17살 착한 고민에 의한 선택을 하자.
나는 17살 처음으로 내 이정표에 따른 선택을 했다. 중학교 3년간의 부모님과의 나름 타협을 통해 특성화 고교에 진학
하기로 한 것이다. 평소에 컴퓨터를 할때 “기뻤고” 컴퓨터를 통해서 “보람됨”을 느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고등학교의
선택을 통해서 나는 남들보다 앞서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등 교육상으로 특성화 고교에 진학하면서 인문계 고등학교와
다른 수업과정과 교육 방법으로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한층 더 앞설 수 있었고 한층 더 깊은 단계의 착한 고민을 할 수가
있었다.

선택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다.
어느 누가 말하길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 라고 했다. 한번의 선택의 모든걸 좌우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선택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다. 항상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기에 고민 또 고민이 필요하다. 선택 하고 나면 그건 단순한
인생의 변수일 뿐이다. 내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많이 봤다. 특성화 고교에 진학해서 그것도 정보통신과에 왔는데
“나의 궁극적 목표는 이 길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건축으로 가는 친구, 요리로 가는 친구 다양하게 만나봤다.
이런 사례를 보면 단순히 한번의 선택의 인생의 모든걸 좌우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정표가 반대로 꼽혔다면 다시
뽑아서 수정하고 꼽으면 된다. 착한 고민이 만든 이정표는 Read-only가 아니다.

착한 고민을 한 당신의 미래는 어떤가?
아무래도 착한 고민을 먼저 했다고 생각하는 나는 인생이 즐거웠다, 또 보람찼다. 내가 하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파악했고 그 변수들을 통한 17살의 선택은 나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었다. 전문계 고교 창의아이디어
경진대회에 나가서 수상을 한다던가, 세계의 유명한 석학과 CEO들만 참석한다는 서울디지털포럼에 3년내내
최연소로 참가한다던가, LGTelecom에서 주최하는 OZ모바일웹사이트공모전에서 수상한다던가한 나의 경험은
“나 라서”가 아니다 “나의 착한 고민이 잘 되서”다. 내가 잘나거나 뛰어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내 착한 고민의
선택의 나를 이곳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착한 고민은 나를 완벽하고 잘난 사람이 아니라 부족하고
배울게 많은 사람으로 생각하게끔 해주어 아직도 나는 발전하려고 노력한다.

지속가능한 무엇.
요즘 화두는 지속가능한 무엇이다. 이 착한 고민도 지속가능한 고민이다. 어떤 연수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내놓으라하는
장인 분을 만났다. 그 분은 서른살에야 현재의 직업을 선택하여 정착하셨다고 했다. 내가 앞서 말했던 17살에 비하면
매우 늦은 시기다. 그렇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때는 이미 늦었다.”라는 박명수씨의 말을 되새겨보면 그래도
의미상으로는 늦었다고 생각할때 얼른 도전하라는 말인것 같다. 17살, 30살이 문제는 아니다. 착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계속 하라는 것이다. 실패던 성공이던. 그 고민을 통한 선택은 당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것이고, 지속가능한 착한 고민은
당신이 더욱더 빛나는 인생을 살게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이라면,
우리 지금바로당장!!
착한 고민을 해보자, 인생에 있어 궁금한 것은 뭐든지 물어봐서 기억하고 흥미있어 보이는건 뭐든지 도전해서 경험을 쌓자
그리고 착한 고민이 만든 이정표에 따라 선택을 하자. 그것이 실패하던 성공하던 일단 도전하자. 가장 값진 경험이 성공을
부를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착한 고민을 끊임 없이 한다. 그 것이 바로 오늘의 나를 만들고 미래의 나를 만들고
성공을 부를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2 thoughts on “청소년, 착한 고민을 하자.”

  1. 좋은 글 입니다.
    보편적으로 여학생들이 중학생 때면 이런 고민을 시작하는 것에 비해 남학생들은 군대가서 시작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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